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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선인출판사) 글/ 사진 : 민족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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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자체 월간지인 <민족21>에 연재한 내용을 뼈대로 이 책을 엮어낸 [민족21]은 "북녘 사회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로 시작하는 책의 머리말에서 북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가장 완벽한 ‘북녘 인민 생활사’는 직접 만나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그 날을 기대하며 기획 연재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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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서는 소학교 과정이 4년이기 때문에 남쪽보다 일찍 중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북녘 아이들이 11세부터 16세까지 보내게 되는 중학교 생활은 어떨까? 북녘의 한 중학생이 소개하는 중학교 생활을 들여다 보자.
안녕, 나는 평양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정현희라고 해. 올해 5학년이 됐고 나이는 열 다섯 살이야. 북쪽에서는 소학교가 4년이니까 남쪽으로 치면 중학교 3학년인가? 아무튼 반가워. 지금부터 나의 중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줄게. 좀 두서 없을 지도 모르지만 참고 들어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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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수재양성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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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 컴퓨터 수재반 | "말 버릇이 나쁘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요는 어릴 때부터 그 환경에 담뿍 잠겨서 `컴퓨터 미치광이`를 키워보자는 거예요." 이북 금성 제1중학교의 오정훈 교장이 2001년 4월 1일 신설한 `컴퓨터 수재양성반`의 목표에 대해 재일본 조선인총련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김지영 특파원에게 전한 말이다. 이 학교 컴퓨터 수재반을 전담하고 있는 리창연(59) 부교장은 `컴퓨터 미치광이란 컴퓨터만 있으면 개발 도구를 쓰면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열중해 세상을 놀래는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인재`라고 설명했다. 이 학교가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정통한 마니아를 육성하는 수재교육기관임을 알 수 있다. 이 학교의 전체 학생 1천200명 중 600명이 컴퓨터 수재반 학생이다. 수재반은 각 도에 설립돼 있는 수재양성학교인 제1중학교에서 시험을 통해 엄선된 학생들로 구성됐으며 그 중에는 매년 열리는 `전국수학경연`이나 `알아맞추기경연` 등에서 입상한 학생들도 포함돼 있다. 오 교장은 이들 학생들이 기초과목으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혁명역사, 수학, 외국어를 배우고 과외시간에는 전부 컴퓨터 관련 교육만을 집중적으로 받는다고 밝혔다. 2001년 북에는 이 학교 외에도 만경대학생소년궁전과 평양학생소년궁전, 금성제2중학교에 `컴퓨터 수재양성반`이 만들어졌다. 이곳 교사들은 모두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콤퓨터기술대학, `조선콤퓨터쎈터` 등 교육, 과학연구기관, 컴퓨터전문기관 등에서 근무하던 유능한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 수재양성반의 컴퓨터학습실과 컴퓨터소조실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최신식 컴퓨터 1300대가 갖춰져 있으며, 모든 학생과 교원들에게 1대씩 배정됐다고 한다. 특히 교사용 컴퓨터는 모든 학생들의 컴퓨터와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어 학습실과 소조실에서 모든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금성 제1중학교 수재반의 한 학생은 개학일인 4월 1일 조선중앙방송과 인터뷰에서 "멋있게 꾸려진 컴퓨터 교실과 최신형 콤퓨터들, 그리고 정성을 담아 만든 책상과 의자들은 보면 볼수록 너무도 놀랍고 너무도 황홀하여 정말이지 제가 지금 꿈나라에 와 있는 것만 같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리 부교장은 지난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컴퓨터보급이 "새 지식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를 증대시켜 그들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기폭제가 됐다"고 하면서 "지금 젊은 사람들은 누가 배워주지 않았어도 컴퓨터를 가지고 텔레비전도 보고 오락도 하고 `카라오케`도 하는데 이것은 이전 세대에서는 보지 못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컴퓨터 수재반 신설은 이북의 교육체계가 정보화시대 흐름에 맞춰 컴퓨터 등 첨단 기술 교육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북은 앞으로 컴퓨터 영재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이며, 이를 계기로 북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이끌어 나갈 젊은 인재들이 양산될 전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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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최고엘리트의 산실 혁명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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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이 행진하고 있는 모습. 혁명학원은 철저하게 군대식으로 운영된다. | 북에는 남에 없는 혁명학원이라는 독특한 특수학교가 있다. 이북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다가 사망한 `혁명가`들의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학교이다. 북은 혁명유자녀를 "혁명 무력의 골간을 이룰 후비간부로 키우는 사업"이라고 규정하고 혁명학원 출신들에 대해 `국가적 보상과 사회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일반 주민들에게도 "이들을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히며 이들의 건강을 더 잘 돌보는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우대조치가 "혁명선열들의 피와 땀이 스민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응당한 의무이고 도덕적 의리이며 영예"라는 것이다. 혁명학원은 이같은 특성에 따라 학생들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충성하는 `전사`로 키우고 있다. 학과목도 `김일성동지혁명역사`, `김일성동지의 노작` 등과 같은 정치사상과목 위주로 짜여져 있다. 학교 운영에 드는 경비와 물자는 정부에서 지원한다. 혁명학원 중에서도 전병호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 등 현재 당·정·군 최고간부들의 대부분을 배출한 만경대혁명학원이 북 최고의 혁명학원이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공식 행사같은 데서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걸음을 멈추고 `나의 아들들`이라며 대견해 하곤 했다고 한다. 1947년 10월 12일 `평양 혁명자 유가족학원`이라는 이름으로 평남 대성군에 문을 연 만경대혁명학원은 1차로 335명을 수용했다가 1년 뒤인 1948년 현재의 위치인 평양 만경대에 교사를 신축 이전해 수용인원도 522명으로 늘렸다. 북 당국은 1946년부터 여러차례 만주지역에 흩어져 방랑생활을 하던 `항일혁명유자녀`들을 데려오기 위해 대표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백범 김구선생도 4월 27일 이 학원을 방문했다.
교육기간은 유치원 상급반 1년, 소학교 4년, 중학교 6년 등을 포함 모두 11년이었다. 현재는 중학교 6년과정과 단과대학 2년과정의 8년제로 바뀌어 11살부터 19살까지 700~8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초기에는 빨치산 출신의 자녀들과 직계가족들이 입학했으나 빨치산 유자녀들의 수가 줄어들고 6.25전쟁 희생자들의 자녀들이 생기게 되자 이들까지 받아들였다. 현재는 중앙당 부부장급 이상 고위간부와 `항일투사`로 불리는 빨치산 출신 자녀들이 입학 대상이다. `남조선혁명가`와 순직한 2급(종업원 1000~1500명 규모)이상 기업소의 지배인과 기사장 자녀들에게도 입학 기회가 주어진다. 별도로 입학시험을 보지는 않는다. 교육내용은 6학년까지 중학교와 마찬가지로 `혁명전통`, `조선로동당정책사` 등 사회정치과목을 비롯해 군사학,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외국어 등 일반기초과목으로 편성돼 있다. 7~8학년은 단과대학 수준의 군사·기술교육 위주로 교과가 편성돼 있다. 학생들은 재학기간 중 장교복장을 하고 의무적으로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현역 군관(장교)들인 교원들도 각계의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특정 분야에서 `최고`라는 평가가 나오면 군관 계급을 주어 교원으로 발탁한다. 원장은 대체로 김일성 주석과 같이 만주에서 총을 들고 무장투쟁을 했던 동료들이 맡고 있다. 현재의 원장은 김룡연 차수로 그 역시 항일빨치산 1세대이다. 학원을 졸업하면 대개 군에 입대한다. 입대 후 6개월 가량 일반 사병들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분위기를 익힌 뒤 군사대학에 진학해 재교육을 받고 정식 군관으로 임용돼 군지휘관으로 성장한다. 이 무렵 노동당에도 입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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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소년궁전 전경 | 이곳 학생들은 `김일성의 아들`로 키워지며, 본인들도 이같은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생활한다. 학생들은 최고의 환경 속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김정일 위원장은 `원아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결해 주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학생들이 무슨 악기를 익히고 싶다고 하면 악기를 구해주고, 무슨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면 운동기구를 마련해 준다. 학원에는 교육용 비행기도 있고 탱크까지 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만경대혁명학원의 기본사명에 대해 "혁명 유자녀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 기술적으로, 육체적으로 훌륭히 준비된 유능한 민족간부의 후비로 튼튼히 키우는데 있다"고 설명했다. 만경대혁명학원이 북의 최고 엘리트들을 양성하는 특수교육기관임을 밝힌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6.25전쟁 기간 중 10개월 정도 이곳에서 생활했다. 북은 이곳의 교육과 학생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116차례나 현지지도를 했고, 김정일 위원장이 50여 차례, 김정숙도 26차례 방문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특히 다른 곳과 달리 이 학원에는 1949년 사망한 김정숙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1988년 학원에 세워진 혁명사적비에도 "유자녀들의 친어머니가 되시여 손수 붉은 줄 띠운 학원제복도 지어주시고, 원아들의 학습과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 어머님! 김치도 담그어 주시고 생일상도 차례주시고..."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 학원에 들인 북 최고지도자들의 관심이 각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혁명학원에는 강반석유자녀대학, 남포혁명학원, 새날혁명학원, 해주유자녀혁명학원 등이 있다. 남포혁명학원은 유치원 높은반과 소학교, 중학교 과정에 40여 개 학급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학원은 1951년 1월 `조국해방전쟁에서 희생된 인민군 장병 및 빨치산들과 애국열사들의 유자녀학원 설치에 관한 결정서`라는 제목의 내각 결정이 발표된 직후 설립됐다. 이곳을 졸업한 남학생들은 1958년 9월 문을 연 해주혁명유자녀학원에 진학한다. 여학생들은 강반석유자녀대학에 진학한다. 강반석유자녀대학은 1972년 남포혁명학원의 대학과정을 모태로 설립됐으며 여성 정치간부를 양성하는 4년 과정의 여자대학이다. 새날혁명학원은 1974년에 설립됐으며 인민군 자녀들과 외국에서 파견된 사람의 자녀, 대남사업에 종사하다 사망한 사람의 자녀 등이 수학하고 있다. 이처럼 혁명학원은 국가에 공이 있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대를 이어 국가에 충성하는 인물로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특수 교육기관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만경대혁명학원은 `빨치산 1세대`의 혁명전통을 계승하는 과업을 맡고 있는 북의 핵심적인 후계 교육기관으로, 북의 최고엘리트를 키워내는 산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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