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신미연 대학생본부 간사
2009년 신입회원을 모집 후 진행한 첫사업이자, 08학번이 처음 선배가 되어 준비한 사업이었던 강화도 기행.
25인승의 작은 차를 빌려 자리를 차곡차곡 채워앉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차안에서는 빙고게임을 통한 강화도 사전교양을 진행하고, 겨레하나 노래를 배우며 겨레하나에 대한 해설을 하였다. 약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고 강화대교를 지나 갑곶나루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이시우 선생님이 1시간째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계셨다. 먼저 갑곶나루에 도착해서는 이동휘 선생님과 조봉암 선생님의 비석을 둘러보았다. 이동휘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로서 강화도를 배경으로 의병조직과 전투활동을 통해 항일무장활동을 하셨으며 이후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내기도 하셨다. 죽산 조봉암 선생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해방이후 진보당의 대표로 정치활동을 하였다. 평화통일을 정책으로 내결었다가 국가보안법 혐의로 사형당하셨다. 일제시대부터 해방직후까지의 역사를 두 비석앞에서 단숨에 이해하려니 짧은 우리의 역사지식이 부족한 것이 안타까웠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담장하나를 두고 아직도 살고 있다는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피해자는 지난 과거를 솔직하게 털고 화해하자는데 가해자가 너무 당당하게 지역유지로, 지방권력을 잡으며 떵떵거리고 산다는 가슴아픈 이야기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연미정은 강화도의 8경(景 - 8곳의 경치 좋은 곳)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DMZ 넘어 있는 북녘 땅 개풍을 내려다보며 도시락도 먹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임진왜란, 신미양요 등 왜적의 침입의 1순위였던 강화도에서 6.25전쟁의 흔적과 분단의 현장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이시우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내내 우리를 놀라게 했다.
3층 평화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녘의 땅을 바라보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땅을 만들어놓은 모형을 보았다. 이시우 선생님이 한강에 평화의 배 띄우기를 진행하시기 위해 한미연합사령부등을 만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실제로 남북을 가르고 있는 한강은 한미연합사령부의 관할구역도 아니고 분단선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한강을 통한 남북의 왕래가 가능하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설명하는 동안 휴일이라 평화전망대를 찾아온 시민들과 함께 듣고 함께 박수를 치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모든 강화도 여행코스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이시우 선생님의 <유라시아 측면에서 본 한반도 평화협정>에 관한 사진강연을 해주셨다. 4시간의 여행을 한 피곤함이 밀려옴에도 불구하고 유엔사의 실체, 평화협정의 의미에 대해 들을 때의 강렬한 인상은 지울 수 없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소감을 발표하며 북녘땅이 너무나 가깝다는 것이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던 회원들이 강연에서는 유엔군의 허구와 평화협정체결에 대한 의미를 들으며 복잡한 심경과 희망이 동시에 느껴진다고 했다. 분단의 현실과 조금은 가까워진 듯한 회원들을 보니 대학생본부의 첫 번째 역사여행은 무사히 막을 내린 듯 하다. |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신미연 대학생본부 간사
2009년 신입회원을 모집 후 진행한 첫사업이자, 08학번이 처음 선배가 되어 준비한 사업이었던 강화도 기행.
25인승의 작은 차를 빌려 자리를 차곡차곡 채워앉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차안에서는 빙고게임을 통한 강화도 사전교양을 진행하고, 겨레하나 노래를 배우며 겨레하나에 대한 해설을 하였다. 약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고 강화대교를 지나 갑곶나루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이시우 선생님이 1시간째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계셨다. 먼저 갑곶나루에 도착해서는 이동휘 선생님과 조봉암 선생님의 비석을 둘러보았다. 이동휘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로서 강화도를 배경으로 의병조직과 전투활동을 통해 항일무장활동을 하셨으며 이후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내기도 하셨다. 죽산 조봉암 선생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해방이후 진보당의 대표로 정치활동을 하였다. 평화통일을 정책으로 내결었다가 국가보안법 혐의로 사형당하셨다. 일제시대부터 해방직후까지의 역사를 두 비석앞에서 단숨에 이해하려니 짧은 우리의 역사지식이 부족한 것이 안타까웠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담장하나를 두고 아직도 살고 있다는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피해자는 지난 과거를 솔직하게 털고 화해하자는데 가해자가 너무 당당하게 지역유지로, 지방권력을 잡으며 떵떵거리고 산다는 가슴아픈 이야기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연미정은 강화도의 8경(景 - 8곳의 경치 좋은 곳)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DMZ 넘어 있는 북녘 땅 개풍을 내려다보며 도시락도 먹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임진왜란, 신미양요 등 왜적의 침입의 1순위였던 강화도에서 6.25전쟁의 흔적과 분단의 현장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이시우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내내 우리를 놀라게 했다.
3층 평화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녘의 땅을 바라보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땅을 만들어놓은 모형을 보았다. 이시우 선생님이 한강에 평화의 배 띄우기를 진행하시기 위해 한미연합사령부등을 만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실제로 남북을 가르고 있는 한강은 한미연합사령부의 관할구역도 아니고 분단선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한강을 통한 남북의 왕래가 가능하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설명하는 동안 휴일이라 평화전망대를 찾아온 시민들과 함께 듣고 함께 박수를 치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모든 강화도 여행코스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이시우 선생님의 <유라시아 측면에서 본 한반도 평화협정>에 관한 사진강연을 해주셨다. 4시간의 여행을 한 피곤함이 밀려옴에도 불구하고 유엔사의 실체, 평화협정의 의미에 대해 들을 때의 강렬한 인상은 지울 수 없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소감을 발표하며 북녘땅이 너무나 가깝다는 것이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던 회원들이 강연에서는 유엔군의 허구와 평화협정체결에 대한 의미를 들으며 복잡한 심경과 희망이 동시에 느껴진다고 했다. 분단의 현실과 조금은 가까워진 듯한 회원들을 보니 대학생본부의 첫 번째 역사여행은 무사히 막을 내린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