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김이경 사무총장
거의 10개월만에 가본 평양이었다. 지난해 중반무렵부터 남측 민간인사의 평양 방북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려웠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의 평양행 승인 그자체가 나로서는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지난정권 시절, 한달에 두 번 정도는 북을 방문했던 것 같다. 가족친지들보다 더 자주 보던 북 민족화해협의회 분들이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보지 못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물론 지난 12월 심양에서 긴급한 논의는 했었지만, 그분들이야 평양에서 만나야지, 낯선 이국땅에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북한이 우리의 70년대와 비슷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사회주의 사회이니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와는 가치관의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는 대목이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을 지나며,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에 어려움이 많아 시장을 부분적으로 확대, 계획경제를 보완하는 정책을 취했었고 그뒤 강성대국 건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제가 많이 나아지면서, 다시 계획경제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인 듯 싶다. 물론 확대된 시장경제를 다시 원상복구 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진통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그것이 사회혼란을 야기한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남한의 언론이 북한 전반에 걸쳐 관심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유독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관련한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것도 남한사회 일부계층의 지극히 보수적인 잣대를 가지고서 말이다. 남북 서로간에 공존공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좀더 관심을 다양화 하며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려는 태도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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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김이경 사무총장
거의 10개월만에 가본 평양이었다. 지난해 중반무렵부터 남측 민간인사의 평양 방북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려웠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의 평양행 승인 그자체가 나로서는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지난정권 시절, 한달에 두 번 정도는 북을 방문했던 것 같다. 가족친지들보다 더 자주 보던 북 민족화해협의회 분들이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보지 못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물론 지난 12월 심양에서 긴급한 논의는 했었지만, 그분들이야 평양에서 만나야지, 낯선 이국땅에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북한이 우리의 70년대와 비슷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사회주의 사회이니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와는 가치관의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는 대목이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을 지나며,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에 어려움이 많아 시장을 부분적으로 확대, 계획경제를 보완하는 정책을 취했었고 그뒤 강성대국 건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제가 많이 나아지면서, 다시 계획경제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인 듯 싶다. 물론 확대된 시장경제를 다시 원상복구 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진통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그것이 사회혼란을 야기한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남한의 언론이 북한 전반에 걸쳐 관심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유독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관련한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것도 남한사회 일부계층의 지극히 보수적인 잣대를 가지고서 말이다. 남북 서로간에 공존공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좀더 관심을 다양화 하며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려는 태도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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