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시 무력 통일 불사용, 6자회담 창의적 부활 필요”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에서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발표
[통일뉴스 기고]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에서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발표 / 장창준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824
적대적 남북 관계와 동아시아 신냉전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반도 문제의 악화와 동아시아 신냉전은 고도로 연결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엔 ‘네 개의 약한 고리’가 존재해 왔다. 한반도, 동중국해, 대만해협, 남중국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들 네 곳 자체의 갈등도 커지고 있고 또 갈등이 연결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에서 개최한 ‘제7회 겨레하나 평화포럼’에서 밝힌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의 진단이다. 미중 전략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윤석열 정부의 미일동맹 ‘다걸기’ 그리고 다크호스로 등장한 조선이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
제7회 겨레하나 평화포럼은 2024년 5월 21일 겨레하나 사무실에서 개최되었으며, 현장 20여 명, 줌 40여 명이 참석하여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허상에서 실제로 부상하는 한미일 북중러 구도
정욱식 소장은 ‘한미일 남방 3각 동맹 대 북중러 북방 3각 동맹’의 대결 구도는 지금까지 허상이었다고 진단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역사를 복기해보면, 이런 대결 구도는 없었다는 것.
“197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 소련을 ‘공동의 적’으로 하는 미중일의 전략적 제휴 시기였다. 1990년대 이후 남측은 소련 및 중국과 수교하면서 북방외교의 시대를 연 반면 북은 미국 및 일본과의 수교에 실패하면서 남북 외교의 좌절을 경험했다. 미국은 유일 패권국이 되었고,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제 코가 석 자’였다.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은 한미일과의 교역을 늘리면서 경제성장을 구가했고,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된 북은 ‘고난의 행군’에 돌입했다. 또한 1990년대 말부터 한미일 군사협력이 본격화되었다.”
즉 ‘한미일 남북 3각 동맹’은 존재했으나 ‘북중러 북방 3각 동맹’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소장에 따르면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 노딜’로 끝난 것과 6월 남북미 정상들의 ‘판문점 번개팅’이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전환기적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북중러 북방 3각 동맹’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북의 입장이 바뀌었다. 북은 2019년 말부터 대화의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남북·북미정상회담이 허망한 결과만 낳았다고 판단하고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가져가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둘째, 북을 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도 바뀌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의 추가 제재에 대해 불가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 이유에 대해 정 소장은 “지정학적 갈등과 신냉전의 기운이 확연해지면서 우선순위가 바뀐 것”으로 진단하다. 비확산보다 세력균형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이런 변화를 “중러가 공식적으로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더라도 북핵을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바라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셋째, 여기에 세계 지정학이 요동치면서 대만 문제가 ‘동아시아 화약고’로 부상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의 장기화는 세계 지정학을 요동치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정 소장의 진단이다.
대북 위협 인식의 ‘동조화’, 한미일 군사 결속 움직임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적극적인 안전보장을 제공해 왔던 한미일 군사 협력이 최근 변화하고 있다는 것 또한 정 소장이 강조하는 변화이다. 북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공세적인 성격의 핵독트린을 채택하면서 한미일 사이에 대북 위협인식의 ‘동조화’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 미국의 대한, 대일 안전보장의 강화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도 미국 방어를 위해 기여하고, 한미일 3자 사이의 군사적 결속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 결과이다.
202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과 2023년 8월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이런 경향에 대해 정 소장은 한미일이 미사일방어체제(MD) 협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진단한다.
그런 맥락에서 정 소장이 주목하는 것은 우주군사령부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사령부(인태사령부)에 ‘우주군사령부(U.S. Space Forces Indo-Pacific)’를 창설한 데 이어 주한미군에도 ‘우주군’을 2022년 12월 14일에 창설했다. 이에 대해 정 소장은 다음과 같이 의미를 설명했다.
“우주군사령부 창설은 조선의 중단거리 탄도미사일뿐만 아니라 ICBM 등 장거리 미사일을 우주에서도 탐지·추적해 미국 본토에 대한 방어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주한미군은 대북 억제와 억제 실패 시 격퇴를 통해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해 왔다. 그런데 조선의 미사일 능력이 미국 본토에까지 다다를 정도로 확대되면서 주한미군의 임무 역시 미국 본토 방어용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미일동맹은 이보다 앞서 미국 본토 방어 계획을 세워왔다. 2014년 7월에 집단적 자위 권 행사와 관련된 각의(국무회의) 결정이 그것. 그 핵심적인 내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본이 미국 영토로 향하는 조선의 장거리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미일동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결정 직후에 일본 교토 인근 교가미사키에 두 번째 AN/TP-2 레이더를 설치했는데, 그 용도가 바로 “일본과 미국 본토 방어”이다.
이에 더해 정 소장은 2023년 3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정상화하기로 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소미아가 한미일 MD의 본격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 시기에 주춤했던 한미일 삼각동맹 움직임은 윤석열 정부 들어 가속 화하고 있다는 것이 정 소장의 진단이다. 정 소장에 따르면 한미일 3자 군사훈련이 일상화되고 있고, 지소미아도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 또 윤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SM-3를 도입해 한국형 이지스함에 장착하기로 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달라진 조선과 맞물려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를 고착화시킬 위험을 배가하고 있다.
해법은 존재하는가
정욱식 소장은 남북 그리고 미·중·일·러가 참여한 가운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있었던 6자회담의 창의적인 부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첫째, 위기관리의 유용성이다. 6자회담은 2000년대 전반기 한반도 위기를 관리하고 예방하는 데에 기여했다. 북미 양측이 한사코 대화를 거부하고 있던 당시 시점에서 6자회담은 그런 상황을 수습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정 소장의 평가다. 남북, 북미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양자 대화의 가능성이 낮은 오늘날에도 6자회담의 유용성은 존재한다는 것.
둘째는 실현 가능성이다. 중국은 지금까지도 6자회담의 재개 필요성을 인정하며 ‘쌍중단’, ‘쌍궤병행’으로 대표되는 균형적인 해법을 유지해 왔다. 또한 중국은 다른 나라들 모두와 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 정 소장의 평가다. 최근 극심한 경쟁과 갈등을 겪어온 미국 및 일본과 정상회담을 한 것이 그 사례. 러시아 역시 2023년 10월 19일 최선희 조선 외무상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중러는 “전제 조건 없이 한반도의 안보 문제 논의를 위한 정기적인 협상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을 지지한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다만 6자회담이 열리면 최대주의보다는 최소주의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정욱식 소장은 제안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남북 관계 발전과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구축 등 최대주의 목표를 내세우는 것보다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과 확전을 방지하고 무너진 군사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는 등 최소주의 목표를 세워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특히 9.19 군사합의, 남북 핫라인 복원, 북의 핵시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 중단과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유예 등이 최소주의 목표에 해당한다고 정 소장은 지적한다. 6자가 무력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안전보장을 천명하는 방안도 정 소장의 최소주의에 포함된다.
정 소장이 제안한 또 하나의 해법은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 원칙이다. 정 소장에 따르면 유사시 무력통일론이 만들어진 것은 1998년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원칙 가운데 하나로 ‘흡수통일 배제’를 천명했지만, 한미연합사의 작전 계획 5027-98에 유사시 무력통일론이 포함되었다. 그 후 유사시 무력통일론은 구체화되고 강화되었다.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는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더 확실한 기대효과는 한국 자체에 있다는 것이 정 소장의 판단이다. 한국이 50만에 달하는 대군과 징병제를 고수하는 데 유사시 무력통일론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유사시 무력통일론을 배제하면 병력과 국방비 감축이 가능해진다. 병력을 30만 이하로 줄이고 모병제를 매력적으로 설계하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젠더 갈등 그리고 노동가능인구 급감 등 우리 사회 여러 문제를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 위기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토론 이어져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은 토론에서 실제 북미 합의는 미국이 어겨왔지만 북 책임론이 주되게 거론되는 한국 사회의 실태를 토론했다. 이 문제는 단지 윤석열 정부만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는 것이 변 소장의 평가이다. 변 소장은 또한 한미동맹을 포기할 수 없는 상수로 놓고 한반도 문제를 판단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문제를 분명히 했을 때 한반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열린다는 것이다.
두번째 토론에 나선 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이연희 총장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미국의 존재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당연히 공론화해야 할 한미동맹의 현안들이 산적한데도 과도한 이념 프레임에 갇혀 논의조차 되고 있지 못한 현실을 지적했다. 또 이념으로서의 반미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꼭 해결해야 할 문제이자 당사자 운동으로서의 '한미동맹 문제', '미국 문제'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유사시 무력 통일 불사용, 6자회담 창의적 부활 필요”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에서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발표
[통일뉴스 기고]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에서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발표 / 장창준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824
적대적 남북 관계와 동아시아 신냉전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반도 문제의 악화와 동아시아 신냉전은 고도로 연결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엔 ‘네 개의 약한 고리’가 존재해 왔다. 한반도, 동중국해, 대만해협, 남중국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들 네 곳 자체의 갈등도 커지고 있고 또 갈등이 연결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에서 개최한 ‘제7회 겨레하나 평화포럼’에서 밝힌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의 진단이다. 미중 전략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윤석열 정부의 미일동맹 ‘다걸기’ 그리고 다크호스로 등장한 조선이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
제7회 겨레하나 평화포럼은 2024년 5월 21일 겨레하나 사무실에서 개최되었으며, 현장 20여 명, 줌 40여 명이 참석하여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허상에서 실제로 부상하는 한미일 북중러 구도
정욱식 소장은 ‘한미일 남방 3각 동맹 대 북중러 북방 3각 동맹’의 대결 구도는 지금까지 허상이었다고 진단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역사를 복기해보면, 이런 대결 구도는 없었다는 것.
“197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 소련을 ‘공동의 적’으로 하는 미중일의 전략적 제휴 시기였다. 1990년대 이후 남측은 소련 및 중국과 수교하면서 북방외교의 시대를 연 반면 북은 미국 및 일본과의 수교에 실패하면서 남북 외교의 좌절을 경험했다. 미국은 유일 패권국이 되었고,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제 코가 석 자’였다.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은 한미일과의 교역을 늘리면서 경제성장을 구가했고,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된 북은 ‘고난의 행군’에 돌입했다. 또한 1990년대 말부터 한미일 군사협력이 본격화되었다.”
즉 ‘한미일 남북 3각 동맹’은 존재했으나 ‘북중러 북방 3각 동맹’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소장에 따르면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 노딜’로 끝난 것과 6월 남북미 정상들의 ‘판문점 번개팅’이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전환기적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북중러 북방 3각 동맹’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북의 입장이 바뀌었다. 북은 2019년 말부터 대화의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남북·북미정상회담이 허망한 결과만 낳았다고 판단하고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가져가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둘째, 북을 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도 바뀌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의 추가 제재에 대해 불가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 이유에 대해 정 소장은 “지정학적 갈등과 신냉전의 기운이 확연해지면서 우선순위가 바뀐 것”으로 진단하다. 비확산보다 세력균형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이런 변화를 “중러가 공식적으로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더라도 북핵을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바라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셋째, 여기에 세계 지정학이 요동치면서 대만 문제가 ‘동아시아 화약고’로 부상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의 장기화는 세계 지정학을 요동치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정 소장의 진단이다.
대북 위협 인식의 ‘동조화’, 한미일 군사 결속 움직임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적극적인 안전보장을 제공해 왔던 한미일 군사 협력이 최근 변화하고 있다는 것 또한 정 소장이 강조하는 변화이다. 북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공세적인 성격의 핵독트린을 채택하면서 한미일 사이에 대북 위협인식의 ‘동조화’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 미국의 대한, 대일 안전보장의 강화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도 미국 방어를 위해 기여하고, 한미일 3자 사이의 군사적 결속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 결과이다.
202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과 2023년 8월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이런 경향에 대해 정 소장은 한미일이 미사일방어체제(MD) 협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진단한다.
그런 맥락에서 정 소장이 주목하는 것은 우주군사령부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사령부(인태사령부)에 ‘우주군사령부(U.S. Space Forces Indo-Pacific)’를 창설한 데 이어 주한미군에도 ‘우주군’을 2022년 12월 14일에 창설했다. 이에 대해 정 소장은 다음과 같이 의미를 설명했다.
“우주군사령부 창설은 조선의 중단거리 탄도미사일뿐만 아니라 ICBM 등 장거리 미사일을 우주에서도 탐지·추적해 미국 본토에 대한 방어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주한미군은 대북 억제와 억제 실패 시 격퇴를 통해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해 왔다. 그런데 조선의 미사일 능력이 미국 본토에까지 다다를 정도로 확대되면서 주한미군의 임무 역시 미국 본토 방어용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미일동맹은 이보다 앞서 미국 본토 방어 계획을 세워왔다. 2014년 7월에 집단적 자위 권 행사와 관련된 각의(국무회의) 결정이 그것. 그 핵심적인 내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본이 미국 영토로 향하는 조선의 장거리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미일동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결정 직후에 일본 교토 인근 교가미사키에 두 번째 AN/TP-2 레이더를 설치했는데, 그 용도가 바로 “일본과 미국 본토 방어”이다.
이에 더해 정 소장은 2023년 3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정상화하기로 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소미아가 한미일 MD의 본격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 시기에 주춤했던 한미일 삼각동맹 움직임은 윤석열 정부 들어 가속 화하고 있다는 것이 정 소장의 진단이다. 정 소장에 따르면 한미일 3자 군사훈련이 일상화되고 있고, 지소미아도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 또 윤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SM-3를 도입해 한국형 이지스함에 장착하기로 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달라진 조선과 맞물려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를 고착화시킬 위험을 배가하고 있다.
해법은 존재하는가
정욱식 소장은 남북 그리고 미·중·일·러가 참여한 가운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있었던 6자회담의 창의적인 부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첫째, 위기관리의 유용성이다. 6자회담은 2000년대 전반기 한반도 위기를 관리하고 예방하는 데에 기여했다. 북미 양측이 한사코 대화를 거부하고 있던 당시 시점에서 6자회담은 그런 상황을 수습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정 소장의 평가다. 남북, 북미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양자 대화의 가능성이 낮은 오늘날에도 6자회담의 유용성은 존재한다는 것.
둘째는 실현 가능성이다. 중국은 지금까지도 6자회담의 재개 필요성을 인정하며 ‘쌍중단’, ‘쌍궤병행’으로 대표되는 균형적인 해법을 유지해 왔다. 또한 중국은 다른 나라들 모두와 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 정 소장의 평가다. 최근 극심한 경쟁과 갈등을 겪어온 미국 및 일본과 정상회담을 한 것이 그 사례. 러시아 역시 2023년 10월 19일 최선희 조선 외무상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중러는 “전제 조건 없이 한반도의 안보 문제 논의를 위한 정기적인 협상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을 지지한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다만 6자회담이 열리면 최대주의보다는 최소주의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정욱식 소장은 제안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남북 관계 발전과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구축 등 최대주의 목표를 내세우는 것보다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과 확전을 방지하고 무너진 군사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는 등 최소주의 목표를 세워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특히 9.19 군사합의, 남북 핫라인 복원, 북의 핵시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 중단과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유예 등이 최소주의 목표에 해당한다고 정 소장은 지적한다. 6자가 무력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안전보장을 천명하는 방안도 정 소장의 최소주의에 포함된다.
정 소장이 제안한 또 하나의 해법은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 원칙이다. 정 소장에 따르면 유사시 무력통일론이 만들어진 것은 1998년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원칙 가운데 하나로 ‘흡수통일 배제’를 천명했지만, 한미연합사의 작전 계획 5027-98에 유사시 무력통일론이 포함되었다. 그 후 유사시 무력통일론은 구체화되고 강화되었다.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는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더 확실한 기대효과는 한국 자체에 있다는 것이 정 소장의 판단이다. 한국이 50만에 달하는 대군과 징병제를 고수하는 데 유사시 무력통일론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유사시 무력통일론을 배제하면 병력과 국방비 감축이 가능해진다. 병력을 30만 이하로 줄이고 모병제를 매력적으로 설계하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젠더 갈등 그리고 노동가능인구 급감 등 우리 사회 여러 문제를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 위기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토론 이어져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은 토론에서 실제 북미 합의는 미국이 어겨왔지만 북 책임론이 주되게 거론되는 한국 사회의 실태를 토론했다. 이 문제는 단지 윤석열 정부만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는 것이 변 소장의 평가이다. 변 소장은 또한 한미동맹을 포기할 수 없는 상수로 놓고 한반도 문제를 판단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문제를 분명히 했을 때 한반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열린다는 것이다.
두번째 토론에 나선 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이연희 총장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미국의 존재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당연히 공론화해야 할 한미동맹의 현안들이 산적한데도 과도한 이념 프레임에 갇혀 논의조차 되고 있지 못한 현실을 지적했다. 또 이념으로서의 반미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꼭 해결해야 할 문제이자 당사자 운동으로서의 '한미동맹 문제', '미국 문제'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