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강제동원 판결 4년과 한미일 프놈펜 성명에 부쳐
"지연된 정의는 실현될 수 있을까?"
이연희 사무총장
최근 탈진실이란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나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를 생각하면 정말 그렇습니다. 이런 류의 주장들이 신념이 되어 매주 수요일이면 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평화로를 점령하고 혐오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주옥순과 온갖 보수유튜버들 말입니다. 객관적인 근거와 자료, 통계와 연구 등으로 이미 검증된 역사적 사실이 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맹목적 신념은 탈진실의 전형입니다. 저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온갖 가짜뉴스와 혐오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판을 치는 세상이니 정말 ‘탈진실’의 시대인 건가, 씁쓸한 마음입니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탓에 역사부정은 한국과 일본에서 끊임없이 계속 되어 왔습니다. 끈질기게 유포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그렇고, 아베 전 총리의 역사수정주의는 하나둘씩 역사의 진실을 삭제하고 거짓을 선동해왔습니다. 아베의 거짓선동은 일본내 혐한(嫌韓) 정서를 최고치로 끌어 올렸고, 아베 정치는 혐한을 먹고 자랐습니다.
정부는 끝내 강제동원 피해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가
2018년 11월 29일,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미쓰비시 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들도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4년이 되도록 배상은 되지 않았고, 원고 5명 중 3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고들은 일본 미쓰비시 본사까지 직접 찾아가 대화를 요구했지만, 끝내 미쓰비시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결국 피해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미쓰비시 한국 자산에 대한 압류와 매각 절차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윤석열 정부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보냅니다. 매각명령 인용을 중단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더 큰 우려는 최근 한일 간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해 논의되고 있다는 ‘병존적 채무 인수’ 방안입니다.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 등이 일제강제동원지원재단에 기부금을 내어 이 돈으로 원고들에게 배상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식민지배 인정도, 사죄도 없이 모호한 성격의 돈으로 ‘진실’을 묻어 버린 한일 국교정상화, 1965년 한일협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돈을 무기로 피해자들을 이간질하고 ‘다 끝났다’ 선언하는 식의 해결, 그동안 어디선가 많이 봐왔던 방식입니다. 백 번 양보해 과거엔 나라가 힘이 없어 그랬다고 친다해도, 지금은 왜? 국가가, 정치가 국민을 지키기는커녕 외면하다 못해 내동댕이치는 것인지, 기가 찹니다.
한미일의 사상 첫 안보 공동성명이 의미하는 것
지난 13일, 한미일 3국은 사상 첫, 안보 공동성명인 프놈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일간 역사 문제의 특수성 때문에, 또 일본이 공식적으로는 정식 군대를 보유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던 한일, 한미일간 군사협력을 전 세계에 공표한 역사적인(?) 성명입니다. 그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을 윤석열 대통령이 해냈습니다.
프놈펜 성명에서 한미일 3국이 북한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까지 공동의 적으로 규정했다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합니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구도가 한반도를 기준으로 그어질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한반도가 중국을 배제하는 신냉전의 최전방이 되는 것을 자처한 꼴입니다.
지난 9월과 10월, 동해상에서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이 벌써 두 차례나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미 전략자산이 순환배치 된 한반도 주변에서 한미일 연합훈련을 진행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해상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훈련도 곧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가진 한국이 미국과 일본없이 안보를 지킬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을 마치 천군만마라도 얻은 양 선전하는 것도 문제거니와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쥔 미국, 아직 과거사도 해결하지 못한 일본에 의지하겠다는 것이 종속을 자처하는 것임이 뻔한 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이상한 노릇입니다. 더구나 미국의 일극 패권이 붕괴되는 가운데 대부분의 나라들이 저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노력에 골몰하는 때에,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와 한미일 군사동맹은 ‘탈진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협력해 북을 막는다’는 생각이나 ‘한미동맹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실용적이지도 못하고 진실에도 반합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대화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은 ‘적대관계’로 돌아섰고, 최근까지 한반도 ‘위기’가 사뭇 심각했습니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심각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진실이 이기는 것이 상식이고 정의입니다
탈진실이 판을 치는 건 탈진실을 무기로 삼으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탈진실을 이기는 것이 상식이고, 정의입니다. 혐오와 거짓선동은 그것을 생산하는 원천들의 인권과 생명조차 망가뜨릴 뿐 사람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는 못합니다.
일본의 식민지배도, 일제의 강제동원와 일본군 성노예도 역사적 진실이며, 지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상식이고 정의입니다. 일본을 응징해야 해서가 아니라 일본이 역사수정주의를 바로잡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야 동아시아의 평화도 역사 정의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전략을 위해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었듯, 미국의 신냉전 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으로 다시 일본의 군국주의가 전면화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될 일입니다.
강대국 정치가 좌우하는 세계 질서에서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일은 불가능한가? 미쓰비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4년과 한미일 프놈펜 성명에 부쳐, 유예된 역사정의를 실현하는 일을 출발선으로 삼는다면,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미래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와 외교가 바로 선다면 말입니다.
미쓰비시 강제동원 판결 4년과 한미일 프놈펜 성명에 부쳐
"지연된 정의는 실현될 수 있을까?"
이연희 사무총장
최근 탈진실이란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나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를 생각하면 정말 그렇습니다. 이런 류의 주장들이 신념이 되어 매주 수요일이면 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평화로를 점령하고 혐오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주옥순과 온갖 보수유튜버들 말입니다. 객관적인 근거와 자료, 통계와 연구 등으로 이미 검증된 역사적 사실이 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맹목적 신념은 탈진실의 전형입니다. 저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온갖 가짜뉴스와 혐오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판을 치는 세상이니 정말 ‘탈진실’의 시대인 건가, 씁쓸한 마음입니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탓에 역사부정은 한국과 일본에서 끊임없이 계속 되어 왔습니다. 끈질기게 유포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그렇고, 아베 전 총리의 역사수정주의는 하나둘씩 역사의 진실을 삭제하고 거짓을 선동해왔습니다. 아베의 거짓선동은 일본내 혐한(嫌韓) 정서를 최고치로 끌어 올렸고, 아베 정치는 혐한을 먹고 자랐습니다.
정부는 끝내 강제동원 피해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가
2018년 11월 29일,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미쓰비시 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들도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4년이 되도록 배상은 되지 않았고, 원고 5명 중 3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고들은 일본 미쓰비시 본사까지 직접 찾아가 대화를 요구했지만, 끝내 미쓰비시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결국 피해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미쓰비시 한국 자산에 대한 압류와 매각 절차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윤석열 정부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보냅니다. 매각명령 인용을 중단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더 큰 우려는 최근 한일 간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해 논의되고 있다는 ‘병존적 채무 인수’ 방안입니다.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 등이 일제강제동원지원재단에 기부금을 내어 이 돈으로 원고들에게 배상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식민지배 인정도, 사죄도 없이 모호한 성격의 돈으로 ‘진실’을 묻어 버린 한일 국교정상화, 1965년 한일협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돈을 무기로 피해자들을 이간질하고 ‘다 끝났다’ 선언하는 식의 해결, 그동안 어디선가 많이 봐왔던 방식입니다. 백 번 양보해 과거엔 나라가 힘이 없어 그랬다고 친다해도, 지금은 왜? 국가가, 정치가 국민을 지키기는커녕 외면하다 못해 내동댕이치는 것인지, 기가 찹니다.
한미일의 사상 첫 안보 공동성명이 의미하는 것
지난 13일, 한미일 3국은 사상 첫, 안보 공동성명인 프놈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일간 역사 문제의 특수성 때문에, 또 일본이 공식적으로는 정식 군대를 보유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던 한일, 한미일간 군사협력을 전 세계에 공표한 역사적인(?) 성명입니다. 그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을 윤석열 대통령이 해냈습니다.
프놈펜 성명에서 한미일 3국이 북한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까지 공동의 적으로 규정했다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합니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구도가 한반도를 기준으로 그어질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한반도가 중국을 배제하는 신냉전의 최전방이 되는 것을 자처한 꼴입니다.
지난 9월과 10월, 동해상에서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이 벌써 두 차례나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미 전략자산이 순환배치 된 한반도 주변에서 한미일 연합훈련을 진행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해상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훈련도 곧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가진 한국이 미국과 일본없이 안보를 지킬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을 마치 천군만마라도 얻은 양 선전하는 것도 문제거니와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쥔 미국, 아직 과거사도 해결하지 못한 일본에 의지하겠다는 것이 종속을 자처하는 것임이 뻔한 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이상한 노릇입니다. 더구나 미국의 일극 패권이 붕괴되는 가운데 대부분의 나라들이 저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노력에 골몰하는 때에,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와 한미일 군사동맹은 ‘탈진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협력해 북을 막는다’는 생각이나 ‘한미동맹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실용적이지도 못하고 진실에도 반합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대화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은 ‘적대관계’로 돌아섰고, 최근까지 한반도 ‘위기’가 사뭇 심각했습니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심각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진실이 이기는 것이 상식이고 정의입니다
탈진실이 판을 치는 건 탈진실을 무기로 삼으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탈진실을 이기는 것이 상식이고, 정의입니다. 혐오와 거짓선동은 그것을 생산하는 원천들의 인권과 생명조차 망가뜨릴 뿐 사람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는 못합니다.
일본의 식민지배도, 일제의 강제동원와 일본군 성노예도 역사적 진실이며, 지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상식이고 정의입니다. 일본을 응징해야 해서가 아니라 일본이 역사수정주의를 바로잡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야 동아시아의 평화도 역사 정의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전략을 위해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었듯, 미국의 신냉전 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으로 다시 일본의 군국주의가 전면화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될 일입니다.
강대국 정치가 좌우하는 세계 질서에서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일은 불가능한가? 미쓰비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4년과 한미일 프놈펜 성명에 부쳐, 유예된 역사정의를 실현하는 일을 출발선으로 삼는다면,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미래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와 외교가 바로 선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