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주 간사
다가오는 가을을 준비하며 지난 여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되돌아봅니다.
8월 9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강제동원 공동행동)> 발족식이 있었습니다. 사안별로 필요에 의해 모이던 시민사회단체들이 본격적으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연대와 행동으로 새로운 출발점에 선 것입니다. 겨레하나에서도 조성우 이사장님이 상임공동대표를, 이연희 사무총장님이 사무처장을 맡았고, 저는 사무처로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재판거래 규탄! 양승태를 처벌하라!', '일제 강제동원, 아베는 사죄하라!', '남북이 힘을 합쳐 강제동원문제 해결!' 구호가 담긴 작은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겨레하나가 왜 강제징용 사죄배상운동, 한일교류를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저 또한 그런 고민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한 일본인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그 할아버지는 저에게 조선인 피폭자 위령비를 직접 소개해주며 “그 때 내 주변에 조선인이 많았다. 많은 조선인들이 나가사키 일본인들과 함께 피폭을 당했다. 일본이 못된 짓을 했다. 일본인으로서 미안하다”며 저에게 사과를 해왔습니다. 한국에서 매일같이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배상을 요구해왔었는데, 실제 일본인의 사과는 참 낯선 것이었습니다. 일본인 할아버지는 자신이 당시 초등학생이라 잘 몰랐다며 조선인에 대해 무관심했던 태도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기에 이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이 불편한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지, 이 사람들과도 함께 평화통일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처음으로 고민해 본 날이었습니다.
사진> 2030 겨레하나 회원, 재일동포, 일본인들이 각자의 요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통일은 남·북·해외가 함께 하는 것이라는데, 재일동포들 그리고 그들이 구성하고 있는 재일동포 사회, 그들이 살고 있는 일본사회를 유기적인 관계로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8월 11일부터 16일까지 겨레하나는 <재일동포 교류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후쿠오카 지역에 거주하는 재일동포들을 초청해 2030 겨레하나 회원들과 5박6일을 함께 지내는 사업이었는데, 이번 <재일동포 교류사업>에는 우리학교를 졸업한 재일동포, 우리학교를 다니지 못한 재일동포, 그리고 양심적인 일본인들까지 참 다양한 참가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우리가 초청한 재일동포들이 그들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줄 일본인 친구들을 함께 데리고 한국에 온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울고 웃는 시간들을 보냈는데, 일본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동영상>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에서, '우리는 하나다!'
이처럼 일본에도 양심적인 사람들, 과거 일본이 저지른 전쟁 그리고 전쟁범죄에 경각심과 사죄의 뜻을 가지고 활동해온 평화활동가들이 있습니다. 8월 15일에는 제가 일본에서 인턴으로 활동했던 일본 평화운동 단체인 '평화포럼'과 겨레하나와의 간담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평화 운동, 그리고 한일 시민간의 연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배우고, 공부했습니다.
사진> 일본 평화포럼과의 간담회
일본이 패전 후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차별은 오늘 날까지도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 혐오발언 등으로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전후처리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본 평화헌법은 또 다시 전쟁 가능한 나라, 전쟁법으로 개헌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제대로 된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겨레하나가 지금까지 해왔던 평화통일운동과 앞으로 해나가려는 강제동원 사죄배상운동이, 그리고 한일교류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표현만 다를 뿐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모두 평화통일로의 한 길입니다. 다만, 저는 우리가 만들어나갈 한일교류는 단순히 친분관계를 쌓는 것이 아닌,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해내고 한반도의 통일로 평화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는 교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러한 한일교류가 가능해질 때,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재일동포 차별문제도 해결하고, 일본의 전쟁법 개헌을 막으며 평화통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 우키시마호 추모제에 참석해 조선학교 학생들과 바다를 향해 꽃을 던지고 있다.
8월 23일부터 27일까지는 우키시마호 추모제, 그리고 오사카와 고베지역 강제징용 답사도 다녀왔습니다. 우키시마호 추모제 일정에는 조선학교 방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태풍으로 조선학교 학생들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조선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우리를 반겨주셨고, 재일동포들의 삶, 조선학교의 역사 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특히 4.27 판문점선언이 있던 날 학교 전체가 들뜬 분위기였다는 이야기와 겨레하나 판문점책자를 드리니 굉장히 좋아했던 조선학교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사카, 고베지역 답사에서는 강제징용 역사기행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더 많은 겨레하나 회원들과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막연하기만 했던 한일교류가 하나 둘 그 형태를 잡아갑니다. 저도 겨레하나와 함께 추상적으로 구상하기만 했던 ‘우리가 해 나갈 한일교류’의 상을 조금씩 구체화시켜 나갑니다. 사실 이제까지 조선 국적을 가진 동포들은 한국으로의 입출국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조선학교 학생들이 남쪽으로는 수학여행을 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올해 우리는 재일동포, 그리고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만났습니다. <재일동포 교류사업> 재일동포 단장 리대미는 소감으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이 얼마나 나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또한 이번에 함께 행사에 참가한 친구들이 앞으로도 같은 방향을 보며 걸어 나갈 결의를 다졌다.” 이렇게 우리는 동지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여름, 우리는 본격적으로 한일교류를 펼쳐나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앞으로 겨레하나는 지난 시기 열심히 준비해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보여줄 것입니다. 재일동포들과 5박6일의 일정을 마치고 공항에서 헤어지며 외쳤던 말을 이 글을 맺으며 다시 한 번 외쳐봅니다. 자, 이제 출발!
정은주 간사
다가오는 가을을 준비하며 지난 여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되돌아봅니다.
8월 9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강제동원 공동행동)> 발족식이 있었습니다. 사안별로 필요에 의해 모이던 시민사회단체들이 본격적으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연대와 행동으로 새로운 출발점에 선 것입니다. 겨레하나에서도 조성우 이사장님이 상임공동대표를, 이연희 사무총장님이 사무처장을 맡았고, 저는 사무처로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재판거래 규탄! 양승태를 처벌하라!', '일제 강제동원, 아베는 사죄하라!', '남북이 힘을 합쳐 강제동원문제 해결!' 구호가 담긴 작은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겨레하나가 왜 강제징용 사죄배상운동, 한일교류를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저 또한 그런 고민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한 일본인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그 할아버지는 저에게 조선인 피폭자 위령비를 직접 소개해주며 “그 때 내 주변에 조선인이 많았다. 많은 조선인들이 나가사키 일본인들과 함께 피폭을 당했다. 일본이 못된 짓을 했다. 일본인으로서 미안하다”며 저에게 사과를 해왔습니다. 한국에서 매일같이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배상을 요구해왔었는데, 실제 일본인의 사과는 참 낯선 것이었습니다. 일본인 할아버지는 자신이 당시 초등학생이라 잘 몰랐다며 조선인에 대해 무관심했던 태도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기에 이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이 불편한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지, 이 사람들과도 함께 평화통일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처음으로 고민해 본 날이었습니다.
사진> 2030 겨레하나 회원, 재일동포, 일본인들이 각자의 요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통일은 남·북·해외가 함께 하는 것이라는데, 재일동포들 그리고 그들이 구성하고 있는 재일동포 사회, 그들이 살고 있는 일본사회를 유기적인 관계로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8월 11일부터 16일까지 겨레하나는 <재일동포 교류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후쿠오카 지역에 거주하는 재일동포들을 초청해 2030 겨레하나 회원들과 5박6일을 함께 지내는 사업이었는데, 이번 <재일동포 교류사업>에는 우리학교를 졸업한 재일동포, 우리학교를 다니지 못한 재일동포, 그리고 양심적인 일본인들까지 참 다양한 참가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우리가 초청한 재일동포들이 그들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줄 일본인 친구들을 함께 데리고 한국에 온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울고 웃는 시간들을 보냈는데, 일본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동영상>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에서, '우리는 하나다!'
이처럼 일본에도 양심적인 사람들, 과거 일본이 저지른 전쟁 그리고 전쟁범죄에 경각심과 사죄의 뜻을 가지고 활동해온 평화활동가들이 있습니다. 8월 15일에는 제가 일본에서 인턴으로 활동했던 일본 평화운동 단체인 '평화포럼'과 겨레하나와의 간담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평화 운동, 그리고 한일 시민간의 연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배우고, 공부했습니다.
사진> 일본 평화포럼과의 간담회
일본이 패전 후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차별은 오늘 날까지도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배제, 혐오발언 등으로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전후처리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본 평화헌법은 또 다시 전쟁 가능한 나라, 전쟁법으로 개헌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제대로 된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겨레하나가 지금까지 해왔던 평화통일운동과 앞으로 해나가려는 강제동원 사죄배상운동이, 그리고 한일교류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표현만 다를 뿐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모두 평화통일로의 한 길입니다. 다만, 저는 우리가 만들어나갈 한일교류는 단순히 친분관계를 쌓는 것이 아닌,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해내고 한반도의 통일로 평화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는 교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러한 한일교류가 가능해질 때,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재일동포 차별문제도 해결하고, 일본의 전쟁법 개헌을 막으며 평화통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 우키시마호 추모제에 참석해 조선학교 학생들과 바다를 향해 꽃을 던지고 있다.
8월 23일부터 27일까지는 우키시마호 추모제, 그리고 오사카와 고베지역 강제징용 답사도 다녀왔습니다. 우키시마호 추모제 일정에는 조선학교 방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태풍으로 조선학교 학생들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조선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우리를 반겨주셨고, 재일동포들의 삶, 조선학교의 역사 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특히 4.27 판문점선언이 있던 날 학교 전체가 들뜬 분위기였다는 이야기와 겨레하나 판문점책자를 드리니 굉장히 좋아했던 조선학교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사카, 고베지역 답사에서는 강제징용 역사기행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더 많은 겨레하나 회원들과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막연하기만 했던 한일교류가 하나 둘 그 형태를 잡아갑니다. 저도 겨레하나와 함께 추상적으로 구상하기만 했던 ‘우리가 해 나갈 한일교류’의 상을 조금씩 구체화시켜 나갑니다. 사실 이제까지 조선 국적을 가진 동포들은 한국으로의 입출국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조선학교 학생들이 남쪽으로는 수학여행을 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올해 우리는 재일동포, 그리고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만났습니다. <재일동포 교류사업> 재일동포 단장 리대미는 소감으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이 얼마나 나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또한 이번에 함께 행사에 참가한 친구들이 앞으로도 같은 방향을 보며 걸어 나갈 결의를 다졌다.” 이렇게 우리는 동지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여름, 우리는 본격적으로 한일교류를 펼쳐나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앞으로 겨레하나는 지난 시기 열심히 준비해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보여줄 것입니다. 재일동포들과 5박6일의 일정을 마치고 공항에서 헤어지며 외쳤던 말을 이 글을 맺으며 다시 한 번 외쳐봅니다. 자, 이제 출발!